정의 및 개요
혈관미주신경성 실신(vasovagal syncope, VVS)은 미주신경(vagus nerve)의 과도한 활성에 의해 서맥(bradycardia)과 혈관 확장이 동시에 발생하여 뇌 혈류가 일시적으로 감소하면서 의식을 잃는 신경매개성 실신(neurally mediated syncope)의 대표적 형태이다. 실신(syncope)은 일과성 의식소실(transient loss of consciousness)의 한 유형으로, 뇌 전체의 저관류(global cerebral hypoperfusion)에 의해 발생하며 자발적으로 완전히 회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[2].
VVS는 전체 실신 원인의 약 56~66%를 차지하여 가장 흔한 실신 유형이다 [2] [3]. 2018년 유럽심장학회(European Society of Cardiology, ESC) 실신 가이드라인에 따르면, 일반 인구의 약 40%가 일생 동안 한 번 이상 실신을 경험하며, 이 중 절반 이상이 혈관미주신경성 기전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[2]. 연간 발생률은 인구 1,000명당 약 6.2건이며, 응급실 내원 원인의 약 1~3%를 차지한다 [2].
VVS는 어느 연령에서나 발생하지만, 첫 발생 시기는 10~30세에 가장 흔하다 [5]. 여성이 남성보다 약간 높은 발생률을 보이며, 고령에서는 기립성 저혈압(orthostatic hypotension)과의 감별이 중요하다. VVS 자체는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양성 질환이나, 반복 발생 시 외상 위험과 삶의 질 저하가 동반된다. Sheldon 등(2006)의 연구에서 VVS 환자의 약 25%가 5년 내 재발을 경험하였다 [6].
발생 기전
VVS의 핵심 기전은 베졸드-야리쉬 반사(Bezold-Jarisch reflex)이다 [5]. 이 반사는 정상적인 자율신경 반응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서 역설적인 혈압 하강과 서맥을 유발하는 과정이다.
정상적으로 기립 시 약 500~800mL의 혈액이 중력에 의해 하지와 내장 혈관으로 이동한다. 이에 대응하여 압력수용체(baroreceptor)가 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키고, 심박수와 말초혈관 저항을 증가시켜 혈압을 유지한다 [2]. VVS에서는 이 보상 기전이 역전된다.
기립 상태가 지속되면 정맥 환류가 감소하고 심실 충만이 줄어든다. 상대적으로 비어 있는 심실이 과도하게 수축하면서 심실 벽의 기계수용체(mechanoreceptor)가 자극된다 [5]. 이 신호가 미주신경 구심성 섬유(vagal afferent fiber)를 통해 연수(medulla oblongata)의 혈관운동 중추에 전달되면, 교감신경은 갑자기 억제되고 부교감신경(미주신경)은 과활성화된다.
그 결과 심박수가 급격히 감소(서맥)하고, 말초혈관이 확장되어 혈압이 급격히 하강한다 [5]. 뇌 혈류가 임계치 이하로 감소하면 의식소실이 발생한다. 뇌 혈류가 약 6~8초간 완전히 차단되면 실신에 이른다 [3].
VVS의 반응 양상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[2]:
- 혈관억제형(vasodepressor type): 혈압 하강이 주된 기전이며, 심박수 감소는 경미하다.
- 심장억제형(cardioinhibitory type): 서맥 또는 일시적 심정지(asystole)가 주된 기전이다. 3초 이상의 심정지가 관찰되기도 한다.
- 혼합형(mixed type): 혈압 하강과 서맥이 모두 현저하게 나타난다. 임상에서 가장 흔한 유형이다.
최근에는 대뇌 피질, 도피질(insular cortex), 편도체(amygdala) 등 상위 중추신경계의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[5]. 감정적 스트레스나 통증이 실신을 유발하는 것은 대뇌 피질에서 연수의 자율신경 중추로 하향 신호가 전달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.
유발 요인
VVS는 특정 상황이나 자극에 의해 유발되는 경우가 많다 [2] [5]. 주요 유발 인자는 다음과 같다.
기립 관련 요인으로는 장시간 서 있기, 더운 환경에서의 기립, 사람이 밀집한 공간, 교회나 학교 조회에서의 장시간 부동 자세 등이 있다. 군인이나 학생이 도열 중 쓰러지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[3].
감정·통증 관련 요인으로는 채혈, 주사, 수술 장면 목격, 극심한 통증, 공포, 불안 등이 있다. 채혈 시 실신하는 것은 VVS의 전형적 사례이다 [3].
신체적 요인으로는 탈수, 과도한 발한, 과음 후, 장시간 공복, 수면 부족, 과로 등이 있다. 뜨거운 목욕이나 사우나 후 실신도 혈관 확장에 의한 VVS 기전으로 발생한다 [5].
배뇨, 배변, 기침, 연하(삼킴) 등 특정 동작에 의해 유발되는 상황 실신(situational syncope)도 넓은 의미에서 신경매개성 실신에 포함된다 [2]. 경동맥동 과민증(carotid sinus hypersensitivity)에 의한 실신은 목에 압력이 가해질 때 발생하며, 고령 남성에서 호발한다.
증상
VVS의 증상은 전구기(prodromal phase), 실신기(syncopal phase), 회복기(recovery phase)의 세 단계로 구분된다 [2] [3].
전구증상
실신 발생 수초에서 수분 전에 나타나는 경고 증상이다. VVS 환자의 약 70~80%에서 전구증상이 선행한다 [3]. 어지럼(lightheadedness), 눈앞이 흐려지거나 어두워지는 시각 변화, 오심(nausea), 발한(diaphoresis), 안면 창백, 이명 또는 청각 둔화, 사지의 저림감, 전신 무력감 등이 대표적이다. 심박수 감소와 혈압 하강이 진행되면서 사지가 차가워지고 하품이 나오기도 한다 [5].
전구증상을 조기에 인지하면 앉거나 눕는 동작으로 실신을 예방할 수 있으므로, 환자 교육에서 전구증상 인지 훈련은 핵심적 요소이다 [1].
실신기
뇌 혈류가 임계치 이하로 감소하면 의식소실이 발생한다. VVS에 의한 실신은 대부분 수초에서 1분 이내에 자연 회복된다 [3]. 실신 중 근긴장이 소실되어 쓰러지며, 짧은 강직성 또는 간대성 근경련(myoclonic jerk)이 동반될 수 있다. 이는 간질(epilepsy)과 혼동될 수 있으나, VVS에서의 경련 양 움직임은 뇌 저관류에 의한 이차적 현상으로 간질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[3].
실신 중 일시적인 서맥 또는 3초 이상의 심정지(asystole)가 관찰될 수 있다. 2018년 ESC 가이드라인에 따르면, VVS 환자의 약 40~50%에서 기립경사테이블 검사 중 3초 이상의 심정지가 기록된다 [2].
회복기
누운 자세로 전환되면 뇌 혈류가 회복되면서 의식이 돌아온다. 회복 후 전신 피로, 두통, 오심 등이 수분에서 수시간 지속될 수 있다 [5]. 의식 회복 후에도 너무 빨리 일어나면 재차 실신할 수 있으므로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.
진단
VVS의 진단은 병력 청취가 가장 중요하며, 기립경사테이블 검사(tilt table test)가 표준 진단 도구이다 [2].
병력 청취
전형적인 유발 인자(장시간 기립, 통증, 더위, 감정적 스트레스 등)와 전구증상의 존재, 실신의 양상과 회복 과정을 체계적으로 파악한다 [2]. 실신의 시작 자세(기립 또는 앉은 자세), 목격자 진술, 실신 지속 시간, 경련 동반 여부, 회복 후 상태 등이 중요한 정보이다. 가족력, 심장 질환 병력, 약물 복용력도 반드시 확인한다.
2018년 ESC 가이드라인은 병력만으로 전형적 VVS를 진단할 수 있다고 명시하였다 [2]. 전형적 유발 인자와 전구증상이 있고, 기질적 심장 질환이 배제되며, 신경학적 이상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.
기립경사테이블 검사
환자를 검사대에 눕힌 후 60~70도 각도로 20~45분간 기울여 혈압과 심박수의 변화를 연속 측정한다 [1] [2]. 검사 중 실신이 재현되면서 혈압 하강 및 서맥이 확인되면 양성으로 판정한다. 기본 검사에서 반응이 없으면 니트로글리세린(nitroglycerin) 설하 투여 또는 이소프로테레놀(isoproterenol) 정맥 투여로 약물 유발 검사를 시행한다 [2].
기립경사테이블 검사의 민감도는 약 61~69%, 특이도는 약 93%로 보고된다 [2]. 재현성(reproducibility)이 완벽하지 않아 검사 음성이 VVS를 배제하지는 못한다.
감별 진단
실신의 감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심인성 실신(cardiac syncope)의 배제이다 [2]. 심인성 실신은 부정맥, 구조적 심장 질환, 대동맥 협착 등에 의해 발생하며, VVS와 달리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. 12유도 심전도(ECG), 심초음파, 24시간 심전도 모니터링(Holter monitoring) 등을 통해 감별한다.
간질(epilepsy)과의 감별도 중요하다. VVS에서 동반되는 경련 양 움직임(convulsive syncope)은 간질 발작과 혼동될 수 있으나, VVS에서는 의식소실 후에 짧은 경련이 나타나고, 발작 후 혼돈(postictal confusion)이 없거나 매우 짧다 [3].
기립성 저혈압, 경동맥동 과민증, 심인성 가성실신(psychogenic pseudosyncope)도 감별 대상이다 [2].
치료
VVS의 치료는 비약물 치료가 1차 치료이며, 반복성 실신에서 약물 치료와 기기 치료를 고려한다 [1] [2].
환자 교육 및 유발 인자 회피
VVS가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양성 질환임을 환자에게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 치료의 출발점이다. 이 교육만으로도 상당수 환자에서 불안이 감소하고 재발률이 낮아진다 [2]. 개인별 유발 인자를 파악하여 회피하도록 안내한다. 장시간 기립, 더운 환경, 탈수 상태, 과도한 음주 등을 피하도록 한다.
물리적 역압법
전구증상이 느껴질 때 시행하는 등척성 근수축(isometric muscle contraction) 동작이다 [2]. 다리 교차 후 힘주기(leg crossing with tensing), 손 깍지를 끼고 팔을 당기기(arm tensing with handgrip), 쪼그려 앉기(squatting) 등이 포함된다. van Dijk 등(2006)의 무작위 대조 시험에서 물리적 역압법은 VVS 재발률을 유의하게 감소시켰다 [3]. 2018년 ESC 가이드라인은 물리적 역압법을 전구증상이 있는 VVS 환자에서 Class I(권고 등급)로 권고하였다 [2].
수분 및 염분 섭취
하루 2~3리터의 수분과 6~10g의 소금 섭취가 권장된다 [1] [2]. 충분한 수분·염분 섭취는 순환 혈액량을 증가시켜 기립 시 정맥 환류를 개선한다. 아침 기상 시 물 500mL를 빠르게 마시는 것(water bolus)도 일시적으로 혈압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다 [5].
기립 훈련
벽에 등을 기대고 하루 2회, 회당 20~30분간 서 있는 훈련(tilt training)이다 [5]. 기립에 대한 자율신경 내성을 점진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며, 꾸준히 시행하면 실신 재발률을 약 40~50% 감소시킨다는 보고가 있다 [5]. 다만 환자의 순응도(compliance)가 낮아 장기적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의견도 있다.
약물 치료
비약물 치료로 조절되지 않는 반복성 VVS에서 약물 치료를 고려한다 [2]. 현재까지 VVS에 대해 일관되게 효과가 입증된 약물은 제한적이다.
미도드린(midodrine)은 알파-1 아드레날린 수용체 작용제로, 말초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유지한다. 일부 연구에서 실신 재발을 줄이는 효과가 확인되었다 [2].
플루드로코르티손(fludrocortisone)은 광물코르티코이드로, 나트륨과 수분 저류를 촉진하여 혈액량을 증가시킨다 [1]. POST 2 연구에서 플루드로코르티손은 VVS 재발을 유의미하게 감소시켰다.
베타차단제(beta-blocker)는 과거 널리 처방되었으나, Sheldon 등(2006)의 POST 연구(Prevention of Syncope Trial)에서 메토프롤올(metoprolol)이 위약 대비 VVS 재발 방지에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못하였다 [6]. 다만 42세 이상 환자에서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하위군 분석 결과가 보고되었다 [6].
심장 박동기 삽입
약물 치료에 반응하지 않고 심정지(asystole)가 기록된 심장억제형 VVS에서 영구 심장 박동기(permanent pacemaker) 삽입을 고려할 수 있다 [2]. 2018년 ESC 가이드라인은 40세 이상, 반복성 실신, 이식형 루프 기록기(implantable loop recorder)에서 증상과 연관된 3초 이상 심정지가 기록된 환자에서 이중 방실 박동기(dual-chamber pacemaker)를 Class IIa로 권고하였다 [2].
경과 및 예후
VVS는 대부분 양성 경과를 보인다. 기질적 심장 질환이 없는 VVS 환자의 사망률은 일반 인구와 차이가 없다 [2]. 그러나 재발이 흔하며, 첫 실신 후 1년 내 재발률은 약 25~35%로 보고된다 [6]. 실신 횟수가 많을수록, 젊은 나이에 처음 발생할수록 재발 위험이 높다 [1].
반복성 VVS는 삶의 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. 직업 활동 제한, 운전 금지, 사회적 위축, 불안·우울 등이 동반될 수 있다 [5]. 실신 시 낙상에 의한 두부 외상, 치아 손상, 골절 등 이차 외상도 무시할 수 없다. 고령 환자에서는 낙상에 의한 대퇴골 골절이 이환율과 사망률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.
장기 추적 연구에서 VVS 환자의 상당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신 빈도가 자연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[2]. 특히 청소년기에 발생한 VVS는 성인기에 자연 관해되는 경우가 많다.
생활 가이드
VVS의 재발을 줄이기 위한 일상 생활 관리는 치료의 핵심이다.
수분 섭취는 하루 2~3리터를 목표로 하며, 아침 기상 직후와 식사 전에 충분히 마시는 것이 효과적이다 [2]. 염분은 하루 6~10g을 섭취하되, 고혈압이나 신장 질환이 없는 경우에 한한다. 카페인이나 알코올은 탈수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과량 섭취를 삼간다.
장시간 서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다리를 교차하거나, 체중을 좌우로 이동시키거나, 종아리 근육에 힘을 주는 동작을 반복한다 [5]. 무릎을 곧게 펴고 부동 자세로 서 있는 것을 피한다. 더운 환경에서는 특히 수분 섭취에 주의하고, 장시간 노출을 피한다.
아침 기상 시 급격히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. 침대에서 1~2분간 앉은 자세를 유지한 후 천천히 일어선다. 압박 스타킹(30~40mmHg) 착용은 하지 정맥 저류를 줄여 혈압 유지에 도움이 된다 [2].
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은 심혈관 기능과 자율신경 조절 능력을 향상시킨다 [1]. 주 3~5회, 회당 30~45분의 중강도 운동(빠르게 걷기, 자전거, 수영 등)이 권장된다. 운동 시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고, 탈수 상태에서의 격렬한 운동은 피한다.
채혈이나 치과 시술 등 실신을 유발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사전에 의료진에게 VVS 병력을 알리고, 눕거나 반좌위(semi-recumbent position)에서 시술받도록 한다 [5].